
박하사탕 리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비극의 향연
“사랑해, 미안해”라는 마지막 대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영화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실험적인 서사 구조를 가진 걸작
1. 첫 만남: 박하사탕이 건네는 쓰디쓴 유혹
1999년 개봉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은 단순한 멜로드라마를 넘어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파헤친 작품이다. 영화 제목인 ‘박하사탕’은 순수와 배신, 아픔과 치유를 동시에 상징하는데, 이는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의 인생 여정을 압축하는 메타포다. 개봉 당시 80분이라는 파격적인 러닝타임과 역순행적 서사는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20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재조명받고 있다.
2. 스포일러 없는 줄거리 요약
영호는 1999년 경찰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부터 1979년 첫사랑 순임(문소리 분)과 만나던 순간까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에피소드마다 그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이 어떻게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1990년대 한국의 격변기 속에서 순수했던 청년이 어떻게 타락해가는지,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묵직하게 그려낸다.
3. 깊이 있는 영화 분석
- 시간의 역주행, 구조의 혁신성: 이창동 감독은 6개의 챕터로 구성된 역순행적 서사를 통해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단순한 기법이 아닌, 한국 현대사의 폭력성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선택이다. 특히 각 챕터의 제목(1999년 ‘죽음’, 1994년 ‘배신’ 등)은 이미 결말을 암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과관계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 설경우의 연기 변주곡: 영호의 20년 간의 인생 변화를 한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설경우는 순진한 청년에서 냉소적인 중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미세한 표정 변화와 신체 언어로 구현했다. 특히 1987년 장면에서 그가 보이는 무력감과 1979년의 순수함을 오가는 연기는 한국 영화사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힌다.
- 촬영과 미장센의 상징성: 카메라는 영호의 시점에 집중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배치된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영호가 지켜보는 장면은 직접적인 묘사 대신 먼 산에서 울리는 총소리로 처리되어, 역사적 트라우마와 개인의 무력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또한 붉은 색과 푸른 색의 대비는 영호의 순수함과 타락의 대비를 강조한다.
- 사운드트랙의 서사 기능: 이철승 작곡가의 음악은 시간대를 구분하는 신호로 작용한다. 1979년의 경쾌한 록 음악에서 1999년의 침울한 피아노 연주로 변화하는 사운드트랙은 영호의 내면을 음악적으로 재현한다. 특히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는 비극 속에서도 잔존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4. 개인적 감상: 아픔과 치유의 이중주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역사의 무게에 짓밟힌 개인의 운명을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2010년대 한국 사회를 경험하며 이 영화의 예언적 성격이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영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실패가 아닌, 시대 자체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애절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영호가 순임에게 건네는 박하사탕은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애도로 읽힌다.
감독 이창동은 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사회는 같은 과오를 반복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4년 현재, 이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5. 추천 대상 및 평점
- 추천 대상:
- 한국 현대사에 관심 있는 영화 애호가
- 실험적인 서사 구조에 도전하는 관객
- 설경우의 연기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
-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찾는 사람
- 평점: ⭐⭐⭐⭐☆ (4.5/5)
(역사적 비극과 개인적 비극을 절묘하게 결합한 역작이지만, 다소 느린 전개와 암울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음)
“박하사탕은 아픈 역사를 직시할 때만이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유효합니다.” – 영화 평론가 김모씨